방물장수 총각 오도방이 고리짝을 메고 까치고개를 넘어 선비촌으로 들어가려고 둑길을 걷고 있는데 논둑에 앉아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던 마 서방이 ‘일로 와’ 하는 손짓을 했다. 못 이기는 척 합석해서 꿀맛 같은 막걸리 한잔을 벌컥벌컥 얻어 마셨다.
새참을 이고 왔던 최 부자네 찬모, 마 서방 딸이 무말랭이 한점을 오도방에게 건넸다. 마 서방 딸 민지는 새참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 들고 오도방은 방물 고리짝을 메고 민지와 동행했다. 고래대궐 같은 최 부자네 집에 들어서자 민지는 부엌으로 가고 오도방은 사랑방으로 가 최 부자 영감 앞에 꿇어앉았다.
“그때 부탁한 것 가지고 왔는가?”
최 영감이 굵은 목소리로 묻자 오도방은 말없이 고리짝을 열고 한지로 싼 두툼한 물건을 건넸다. 최 영감이 조심스럽게 노끈을 풀어 한지를 열자 그 속에 또다시 한지를 묶은 비단실, 그걸 풀자 또 한지…. 일곱겹을 풀자 마침내 거무튀튀한 해구신이 나왔다.
“이게 얼마여?”
“오백냥에 구전 삼십냥만 붙여주십시오.”
밀고 당기기를 두어 식경이나 하다가 결국 구전을 떼고 오백냥에 흥정이 성사됐다.
“울릉도에서 암놈 서른마리를 거느렸던 대장 수놈을 잡아 신(腎)을 떼고 해풍에 두달을 말려다가 산삼대로 불을 지펴 그 연기로 훈제를 한겁니다요.”
기생집에서 동기 머리를 올려주고 집을 한채 마련해줬건만 하초(下焦)가 부실해 최 영감이 발악을 하는 것이다. 하도 주색잡기에 탐닉해 정력이 고갈됐다.
최 영감은 천석꾼 부자지만 평소엔 지독한 노랑이자 수전노다. 삼년 머슴살이를 한 마 서방이 약정한 기한을 채우고 나자 새경을 받아쥐고 울상이 돼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나리 새경이 많이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요.”
최 영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서슴없이 치부책을 꺼내 “두해 전 정월 초닷새에 자네가 백부상을 당했다고 이틀을 다녀왔지 삼월 열이틀부터 사흘간 드러누웠지” 하고 읊었다.
더 기가 막힐 일은 찬모로 일했던 민지 새경에선 접시 깨뜨린 것, 젓가락이 모자라는 것을 공제하고 장을 잘못 담갔다느니 김치를 맛없게 담갔다느니 하며 약정한 새경에서 거의 반을 뗀 것이다. 부창부수라 안방마님도 악독하기로는 최 영감 못지않았다.
보름여 만에 방물장수 오도방이 최 영감댁에 나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물 고리짝은 언제나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고리짝을 열자 노리개며 백통 목걸이에 가지가지 색실·은수저·놋수저·수정반지까지. 정신없이 들여다보던 안방마님이 “이건 뭐여” 하며 구석에 처박힌 걸 꺼내려 하자 오도방이 질겁을 하며 고리짝을 닫아버렸다.
“그, 그, 그건 마님 같은 점잖은 분이 보시면 안되는 물건입니다.”
오도방의 말은 안방마님의 호기심만 자극했다.
“무엇인지 구경만 하자꾸나.”
안방마님이 울듯이 애원했다.
“약속하십시오. 제 뺨따귀를 후려치시지 않겠다고.”
마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도방이 고리짝을 열고 그걸 꺼냈다. 그것은 거대한 목신(木腎)이었다. 안방마님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무로 만든 우렁찬 남근은 얼마나 정교한지 힘줄까지 울퉁불퉁했다.
“이걸 누가 만들었는고?”
“소생이 만들었지요.”
벌써 안방마님의 숨이 가빠졌다.
“누구 것을 보고 만들었는가?”
“제 것을 보고….”
“이것은 값이 얼마인가?”
오도방이 모깃소리만 하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어 아주 비쌉니다” 했고 결국 삼백냥에 금목걸이까지 받고 그걸 넘겼다.
열흘 후 방물장수 오도방이 최 부자댁에 들렀다. 최 영감은 첩 집에 처박혀 꼼짝도 않고 안방마님이 혼자서 반갑게 맞았다. 안방마님이 개다리소반에 간단하게 술상을 차려와 손수 한잔 따랐다.
홀짝홀짝 석잔을 마시고 나서 술상을 치우고 요를 깔더니 오도방을 껴안았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자 안방마님이 오도방에게 눈을 흘겼다. 큰 물건을 기대했던 마님은 적이 실망했다.
마 서방이 최 영감을 상대로 모자란 새경 칠십냥을 달라는 송사를 벌이려 하자 오도방이 말리며 이백냥을 쥐여줬다. 최 영감에게 판 해구신은 보신탕집에서 탕 한그릇 값으로 산 개의 물건이요, 안방마님에게 바가지를 씌운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그저 흔한 물푸레나무 목신이다. 오도방과 마 서방 딸 민지는 동짓달에 혼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