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학적으로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 게 확실한데도 기억력 장애 등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호주 비영리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따르면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원인인 뇌의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의 수치가 높아, 병리학적으로 치매에 걸렸음이 분명한데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국제학술지 ≪신경병리학 회보(Acta Neuropathologica Communications)≫에 실린 네덜란드 왕립예술과학아카데미 신경과학연구소 연구 결과를 보면 그런 사례가 전체의 30%나 된다.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인 알츠하이머병은 뇌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축적과 타우 단백질의 엉킴으로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 단백질이 쌓이면 뇌세포(뉴런)에 독성을 띠게 되고 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그 까닭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죽은 뉴런 탓에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는 기억 상실 등 치매 증상으로 나타난다.
“알츠하이머병 이겨내는 유전자 없다고 슬퍼마라”…운동 등으로 면역력 강화하면 돼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의 치명적인 생물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도 이렇다할 증상을 보이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이들 특별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네덜란드 연구팀은 “병리학과 인지 사이의 불일치를 보이는 이들 특별한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매우 높아 치매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 회복탄력성이 유독 높을까?
연구팀은 세 그룹의 뇌를 연구했다. 첫 번째 그룹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숨진 사람들, 두 번째 그룹은 자연사한 건강한 사람들, 세 번째 그룹에는 뇌의 알츠하이머 단백질 수치가 높았지만 평생 치매 증상을 보이지 않았거나 적어도 치매 진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연구팀은 마지막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회복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면역체계의 활동과 관련된 유전자가 이들 특별한 사람들에게서 훨씬 더 활기차게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체계는 뇌에서 지나치게 많은 단백질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돕는 유전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발병)에 대한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
美국립보건통계센터 “2022년 65세 이상의 4%가 새로 치매 진단받아”
연구팀은 “부모에게서 이런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더라도, 알츠하이머병 증상에 대한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며 “생활습관을 확 바꾸고 알츠하이머병 약을 복용하면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운동 등 신체활동은 면역체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뇌에 쌓인 악성 단백질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연구팀에 의하면 신체활동을 꾸준히 더 많이 하면,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에 대한 회복력을 높여주는 유전자를 가진 운 좋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알츠하이머병을 이겨낼 수 있다. 또한 해당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알츠하이머병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지만, 더 오래 살았다면 결국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을 수 있다.
한편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가 펴내는 ‘국립보건통계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미국 65세 이상 성인의 4.0%(남성 3.8%, 여성 4.2%)가 새로 치매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2022년 국민건강면접조사(NHIS)의 데이터를 사용해 치매 진단을 받은 비시설 노인(65세 이상)의 비율을 추정한 결과다. 새로 치매 진단을 받은 성인 비율은 65~74세에서는 1.7%이지만 85세 이상에서는 13.1%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