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속의 쓴 성분을 느끼지 못하게 미각신경을 차단하는 약의 개발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다. 알약과 물약, 가루약의 쓴맛을 싹 없애려면 25가지 쓴맛 수용체를 모두 차단해야 가능하다.
어린이나 노인이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한 약을 처방대로 쉽게 복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범용 쓴맛 차단제’가 개발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모넬화학감각센터는 사람과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시험 결과 보편적이고 일시적인 미각 차단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는 강한 쓴맛 탓에 약을 먹지 않아 건강을 해치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받는 세계의 어린이·노인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모넬화학감각센터(Monell Chemical Senses Center)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유니버시티 시티 사이언스 센터 캠퍼스에 있는 비영리 독립 과학연구소다. 미각, 후각, 화학의 기초연구 기관이다. 많은 어린이와 노인이 알약을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쓰디쓴 물약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강한 쓴맛은 이들 노약자의 건강과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연구팀에 의하면 사람은 25개의 서로 다른 쓴맛 수용체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를 들여다보면 소수의 쓴맛 수용체만이 약의 쓴맛을 대부분 맡아서 처리할 수 있을 뿐이다. 연구의 책임 저자인 린다 J. 플래머 박사(선임연구원)는 “종전의 쓴맛 수용체 차단제와는 달리, 새로 개발한 미각신경 차단제는 모든 대상과 모든 쓴맛 화합물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입안의 미각세포는 ‘TAS2R 미각 수용체군’을 발현하며 단맛, 쓴맛, 짠맛 화합물에 의해 자극받는다. 또한 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아데노신 삼인산, ATP)을 내보내 신경섬유에 신호를 전달한다. ATP는 신경 세포의 특정 수용체(P2X2/P2X3)를 활성화한다. 이 신경은 음식과 약물의 맛에 대한 정보를 뇌로 보낸다.
연구팀은 ‘AF-353’이라는 특정 수용체(P2X2/P2X3) 억제제로 미각 신경의 전달을 차단하고, 약물과 각종 미각 화합물에 의한 쓴맛 신호를 줄였다. 특정 수용체(P2X2/P2X3) 차단제로는 몇 가지가 확인됐다. 일부는 만성기침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에서 부작용으로 미각 장애를 일으켰다. 모넬 연구팀은 이런 부작용을 오히려 적극 활용해 약의 기호성을 개선하는 먹는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입안을 ‘AF-353’으로 헹구면 만성병을 치료하는 두 가지 중요한 약의 쓴맛이 뚜렷히 줄어들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및 B형간염 치료제인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TAF)와 기생충 치료제인 프라지콴텔이 바로 그것이다. AF-353은 지금까지 밝혀진 최초의 범용(보편적) 쓴맛 차단제다. AF-353은 미각만 차단한다. 탄산으로 인한 따끔거림 등 다른 구강 감각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AF-353을 입에 직접 바르는 약(국소 도포제)은 약물 복용에 대한 순응도를 높여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이는 특히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쓴맛 차단제는 사람의 미각이 정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60~90분 동안 차단 효과를 낸다. 연구팀은 약이 더 빨리 작용하고 미각은 더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는 미각 차단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Topical application of a P2X2/P2X3 purine receptor inhibitor suppresses the bitter taste of medicines and other taste qualities)는 ≪영국 약리학 저널(British Journal of Pharmacology)≫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