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빠져 고민인 회사원 최모(45)씨는 6개월째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아보다트'를 복용하고 있다. 전립선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약이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다. 탈모 치료제로는 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최씨는 친구인 비뇨기과 의사에게 사정해 이 약을 처방받았다. 최씨는 "대머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부작용이 걱정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탈모 치료에 이용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2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3년 27만 명이었던 전립선 비대증 환자는 지난해 38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진료 건수도 92만 건에서 138만 건으로 50% 늘어났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 건수 증가율 28%의 두 배에 육박하는 증가세다.
전문가들은 이 중 일부는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비뇨기과 의사는 "전립선 비대증은 40대 이상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씩 20~30대 대머리 남성이 찾아와 아버지 이름으로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처방해 달라고 부탁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로 찾는 약은 '아보다트(성분명:두타스테리드)'와 '프로스카(성분명:피나스테리드)'다. 탈모 환자들 사이에선 약어인 '두타''프카' 등으로 통한다. 일부 인터넷 대머리 동호회에는 두 약에 대한 게시판이 별도로 마련돼 1000건 이상의 글이 올라 있다. 구입 방법을 묻는 질문이 대부분이나 '복용 후 간 수치가 높아졌다'는 등의 부작용에 대한 글도 종종 게재된다.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가 탈모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것은 두 증상이 모두 남성호르몬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CNP차앤박모발센터 최정환 원장은 "이 약들은 남성호르몬이 전립선 비대증과 탈모를 일으키는 물질(DHT)로 변하는 것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며 "그러나 탈모 치료에 대한 안전성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로스카의 제조사인 MSD는 아예 프로스카(5mg)의 용량을 줄여 탈모 치료용으로 '프로페시아'(1mg)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프로페시아는 탈모 치료제로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판하는 탈모 치료제인 프로페시아는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한 달 약값이 6만원을 넘는다. 반면 전립선 비대증 치료는 건강보험이 되기 때문에 월 1만~2만원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60%이상 싼 것이다. 그래서 탈모 환자들은 프로스카를 사서 4등분해 먹는다. 아보다트(0.5mg)는 캡슐이어서 대부분 그대로 먹는다.
제약사도 고민이다. 매출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선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제약사인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관계자는 "11월부터 탈모 치료용으로 아보다트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정식 허가 이후에 안전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남성모병원 비뇨기과 임필빈 전문의는 "두 약 모두 발기부전이나 성욕 감퇴, 정액량 감소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간 등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임산부의 경우 기형아 출산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약을 장기 복용하면 전립선암의 위험을 측정하는 지표(PSA)가 실제보다 낮게 나타난다.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사용했다가 전립선암을 늦게 발견하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는 셈이다. 최정환 원장은 "탈모 치료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안전하게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