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병은 유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고혈압이 2000개 이상의 유전적 변이의 영향을 받는 매우 복잡한 병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퀸메리런던대 연구팀은 ‘게놈 유전자좌’라는 인간 게놈의 새로운 영역을 100개 이상 새로 발견함에 따라 혈압에 대한 독립적인 유전자 신호가 2000개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고혈압은 소금의 과다 섭취, 운동 부족, 흡연,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 외에도 매우 다양한 유전적 요인(유전자 변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에는 100만 명 이상의 데이터가 포함됐다. 지금까지 진행된 혈압 관련 게놈 연구 중 가장 큰 규모다. 연구팀은 혈압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Genome-wide analysis in over 1 million individuals of European ancestry yields improved polygenic risk scores for blood pressure traits)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유전학(Nature Genetics)》에 실렸다.
연구팀은 “고혈압이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유전적 변이의 영향을 받는 매우 복잡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이번 결과는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혈압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에 대한 가장 상세한 그림을 보여준다. 혈압과 고혈압 위험을 훨씬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다유전성 위험점수’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혈압의 유전학을 이해하기 위해 혈압과 고혈압에 대한 ‘전장유전체 연관성 연구(GWAS)’의 대규모 데이터(데이터 세트 4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새로운 영역 113개를 발견함으로써 혈압과 관련된 게놈 유전자좌를 모두 2000개 이상으로 늘렸다. 이 데이터 분석은 혈압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전에 보고되지 않은 유전자 수백 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신약 개발 가능성과 고혈압의 조기 발견 및 예방을 위한 정밀의학의 눈에 띄는 발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분석을 통해 모든 유전적 변이의 영향을 결합해 혈압과 고혈압 위험을 예측하는 ‘다유전성 위험점수’를 계산할 수 있었다. 이 위험점수에 따르면 유전적 위험이 가장 높은 사람은 유전적 위험이 가장 낮은 사람보다 평균 수축기 혈압이 17mmHg 더 높고, 고혈압에 걸릴 위험이 7배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의 책임 저자인 패트리샤 먼로 교수(분자 의학)는 “새로운 다유전성 위험점수를 활용해 특히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혈관병 위험이 있는 사람을 일찍 발견하고 계층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규모 연구는 18년 이상에 걸친 혈압 GWAS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에 쓰인 데이터에는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참가자 50만 명, 국제혈압컨소시엄 참가자 30만 명, 미국 보훈처 ‘백만 베테랑 프로그램’ 참가자 22만 명 등이 포함됐다. 또한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 미국 밴더빌트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등 세계 100개 이상의 대학, 연구소 및 정부기관의 140명 이상이 참여했다.
연구의 공동 책임 저자인 헬렌 워렌 박사(통계유전학)는 “다유전성 위험점수는 정밀의학에서 유용한 도구로 쓸 수 있다. 다만 일상적인 건강관리에 폭넓게 쓰려면 더 다양한 게놈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의 대부분이 유럽계 혈통 사람들 것이었지만, 다유전성 위험점수를 아프리카 혈통의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