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사이트 게시판에서 싸움이 붙은 것을 봤다. 이유인즉슨, 그 사이트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를 꼬셔서 전화번호를 딴 후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여자가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도 씹자 열이 받은 남자가 온라인상에 번호를 마구 유포했다는 것. 여자 역시 뒤늦게 개인정보 유출이라면서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연락 씹는다고 번호를 마구 뿌려댄 놈이나, 전화 씹고 문자 씹다가 번호가 뿌려진 다음에야 반응하는 여자나 똑같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도 여자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 사귈까 말까 하면서 서로 간보며 만나는 사이에서 거절의 방법으로 연락을 씹는다는 것. 그러면서 “전화 안 받고 답문자 안 하면 대충 감 잡아야지 끝까지 연락하는 진상들이 있어요”란다. 이런 애매한 관계에서 호감이 없으니 다시 보지 말자는 뜻으로 사람들이(개인적인 생각으론 여자들이) 잘 쓰는 수법이 바로 ‘연락 씹기’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연락이 오면 상당히 귀찮아하면서 찌질하다, 진상이다 하면서 욕을 한다. 그냥 전화나 문자가 오면 “이제 연락하지 말자”고 하면 되는거 아닌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거늘, 왜 연락을 씹는 우회적인 방법을 쓸까.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을 향해 정확한 의사 표현으로써 “노”를 잘 하지 못하는 습성 탓도 있다.
하지만 분명 잘못된 방법이다. 사실 전화나 문자를 씹어도 계속 연락 오는 사람들, 그들이 자신들이 거절당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연락 씹으면 대충 눈치 까고 떨어지지..”라고 하지만 물론 상대방도 눈치 다 까고 있다. 단지 기분이 나빠서다. 더 이상 호감이 없거나 만나기 싫다는 뜻이라는 거 실컷 알고도 남는다. 그걸 모르는 바보가 어디 있겠나. 왜 한쪽은 연락을 하고, 다른 한쪽은 씹는 걸로 그 대답을 해야 하나? 뭔가 상당히 불공정하고 불편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굳이 앞으로 안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이유가 있나?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말해주는 것이 상대에게, 그리고 자기에게도 효율적인 일이다. “노”라는 대답을 하지 못해, 혹은 하기 싫어 피해놓고 계속 연락 오는 사람을 욕하는 건 반칙이다. 자기도 제대로 행동하지 않고 상대만 탓하는 건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 안 드나?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연락을 씹어서 열 받아서 연락처를 온라인상에 뿌려댄 남자의 이야기. 골 때리지만, 이해도 간다. 얼마나 화가 나고 불쾌했으면 그런 ‘복수’를 다 했겠나?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뒤늦게 발끈한 여자도 엄청난 곤란을 겪었으리라 짐작은 간다. 하지만 왜 처음부터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나? 멋대로 연락을 씹어놓고 남자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남자를 탓할 건가? 만날 때는 서로 얘기해서 만나면서 헤어질 때는 그냥 무시하면 그만인가? 만약, 확실하게 “노”라고 의사전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전화번호를 뿌려댔다면 그 남자는 100% 찌질한 놈이다.(애초에 사람을 잘 봐야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 정도로 찌질한 남자, 생각보다 드물다. 뭔가가 틀어졌으니 그런 진상틱한 복수를 생각해낸 것이 아니겠는가? 남자건 여자건, 좋다는 표현만큼 싫다는 표현도 정확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상대의 가슴에 대못을 마구 박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결국 방법의 문제다. 거절이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중간하게 해서 서로의 감정과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도 곤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