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대답대신 어깨를 한번 으쓱 해보이면서 특유의 미소만을 지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술병을 들어서 그녀의 잔에 가득 술을 들이 부었다.
잔속의 양주가 한계점을 넘으려는 듯 찰랑대면서 아름답게 춤을 추었다.
그런 넘칠 듯 말 듯 찰랑대는 술을 그녀는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마치 넘치면 안 될 것 같은 안타까움이 왠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느 정도 잔속의 술이 안정이 되는 듯하자, 그녀는 거침없이 잔을 들어서 자신의 입 속에 술을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던 남자는, 자신도 술잔을 들어서 한 번에 들이켰다.
그녀도 그 남자가 술을 다 마시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이런다고 나를 우습게 보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용납하지 않아요.”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벨트를 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서 아니라는 듯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는 벨트를 풀던 손을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서 문 쪽을 가리켰다.
‘입구 쪽에서 갈아입으라는 건가?’
그녀는 이러나저러나 뭐 틀릴게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각또각 소리를 내면서 입구 쪽으로 걸어가서 남자를 향해 섰다.
그리고는 이제 만족하냐는 듯 남자를 조용히 응시했다.
“문은 열고..”
점점 요구가 가관이 되었다.
여자는 조용히 남자를 째려보았다.
그리고는 손에 티팬티를 들고, 약간은 기분이 안 좋다는 듯, 입구 앞에 서서는 육중한 대리석의 문을 거칠게 당겨 열었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나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때 마침 주위를 지나다니던 단정한 복장의 남자 종업원이 자신을 찾는 줄 알고는 여자의 쪽으로 서둘러서 다가왔다.
‘이런 제길.’
여자는 자신이 곧 해야 할 행동을 들키기라도 한 듯, 자신이 느껴야할 기분 좋은 쾌감을 빼앗기기라도 하는 듯 마음속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번듯한 복장과 외모의 종업원이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자신의 벨트가 풀어져 있음을 깨달은 여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손으로 감싸고는 종업원을 등지고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환기 좀 시키려고 문을 열은 것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남자는 종업원을 향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매너 있는 톤으로 말했다.
“아~, 나름 환기를 신경 쓴다고 했는데, 불편하셨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런 정도는 아닌데, 숙녀 분께서 조금 답답하다고 해서 그런 겁니다.”
여자는 저런 가식적인 대화를 뻔뻔하게도 나누는 남자가 차라리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종업원은 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방을 조심스러운 몸동작으로 빠져나갔다.
“휴~.”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흡사 지옥에 갔다가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자, 그럼...”
남자는 이제 모든 무대는 마련되었다는 듯 말을 했다.
잠시 남자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여자는 문 옆의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서서, 복도를 누가 지나가더라도 그녀가 보이지 않게 위치를 잡았다.
아무리 봐도 지나가던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 억지로 쳐다보지 않는 이상은 자신의 행위가 보일 리는 없지만, 왠지 가슴이 쿵쾅 뛰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옷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쳤어, 미쳤어...’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다시 자신의 정장바지의 지퍼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자신의 방을 넘어서 온 복도, 아니 온 클럽 안에 울려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치게 몸에 달라붙는 탓에 쉽게 바지가 벗겨지지는 않았지만, 이 남자 앞에서 바지를 벗기 위해서 쩔쩔 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힘이 들었지만,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과감하게 바지를 한 번에 주욱 내렸다.
힐을 잠시 벗어서 바지의 통을 자신의 다리에서 다 빼내고는 다시 힐을 신었다.
벗은 바지를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그녀는 다시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그녀는, 상의는 하늘거리는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하의는 레이스 팬티만을 입고는 다시 여자의 자존심인 힐을 신고 열려있는 문 옆에 바짝 붙어서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서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마치 자신이 사람들이 보고 있는 시선 속에서 팬티만을 입고 서있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 남자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으니, 보여 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 팬티의 하얀색 레이스를 통해서 부끄럽게도 수북한 음모가 벗은 것보다 더 음란하게 남자의 눈에 보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