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갖는 많은 모임 중 동창회가 빠질 수 없습니다. 가식을 덜어내고 편한 마음으로 서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합니다. 이런 편함 때문인지 얼마 전 동창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네들은 마누라와 잠자리를 며칠에 한 번씩 하나?”
어려운 질문이 아님에도 모두들 머뭇거리며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 친구가 “그럼, 마지막 잠자리는 언제 했는지 기억나는 사람?”하고 물었습니다.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아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인지 대부분 묵묵부답인 채 허공만 쳐다보며 술잔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나섰습니다.
“우리 부부는 성관계를 거의 하지 않지만 별 문제없어! 돈만 잘 벌어다 주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냐!”
그러자 모두 그 말이 정답인양 고개를 끄덕이며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재빨리 화제를 돌렸습니다. 성 생활에 대해 짧게 주고받은 대화였지만 친한 동창이라도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부자연스럽나 봅니다. 최근 경제가 어려우니 생활비만이라도 잘 벌어다 주는 남편의 아내는 성생활이 없다 해도 행복할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할까요?
40대 후반으로 사업에 성공한 남편을 반강제적으로 데리고 병원을 찾은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인의 불만은 간단했습니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부부관계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이 꼭 필요하냐고 말합니다.‘그냥 손만 잡고 살면 안 될까? 육체적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더 중요하지! 당신은 좀더 성숙해야 돼!’라고 말하면서요. 하지만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정상적인 부부라면 손만 잡고 사는, 즉 육체관계를 초월해 순수하고 정신적인 사랑만을 추구하는 관계가 되긴 힘듭니다. 그런데도 앞서 이야기한 동창들이나 병원을 찾은 이 남편은 성적 욕구가 없는 병적인 단계를 합리화합니다. 이들과 상담해 보면 육체를 초월한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성관계를 두려워 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성관계를 피하다 부인이 잠자리에 들어야 편안하게 잠을 청합니다. 오늘 하루는 잘 넘겼는데 내일은 어떻게 넘기지 하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담자의 남성 호르몬을 체크해 보면 수치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 호르몬을 보충해 주면 싸움의 고리는 끓기고 사랑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욕이 낮아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의학적인 면을 고려해보는 것도 원인을 찾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다른 여러 가지를 문제의 원인으로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려 애씁니다.
부부관계가 소원하다면 왜 아내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왜 내 아내는 뚱뚱한가, 우리 사랑은 벌써 식어 버렸나, 우리 결혼은 뭔가 잘못 되었나 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러고 나서 전문 상담기관을 찾아 정확한 진단과 상담을 받아야지요.
섹스는 몸으로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런데 몸으로 나누는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때 배우자는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내 아내는 외롭지 않은지요?